×
{"type":"txt","text":"QUV APP","font_size":28,"font_weight":"700","font_family_ko":"Noto Sans KR","font_family_en":"Quicksand","color":"rgb(0, 0, 0)","letter_spacing":0}
  • HOME
  • 교회와 성폭력
  • 우리가 있다
  • 우리가 잇다
  • 방명록
  • 기념품
  • {"google":["Raleway","Quicksand","Questrial"],"custom":["Noto Sans KR"]}
    ×
     
     
    섹션 설정
    {"type":"txt","text":"QUV APP","font_size":20,"font_weight":"700","font_family_ko":"Noto Sans KR","font_family_en":"Quicksand","color":"#000000","letter_spacing":0}
  • ABOUT
  • SERVICE
  • FEATURES
  • GALLERY
  • "그냥 있다, 그래서 잇다."

    홍보연 목사님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감리교 목사 홍보연이라고 합니다. 현재 맑은샘교회에서 담임하고 있고,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에서 오래도록 연구원으로 일하다 2년 전부터는 원장으로 있습니다. 성폭력 관련한 일들을 계속해왔고, 감리교 교단 안에 있는 양성평등위원회에서는 여러 해 동안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여신학자협의회 부설 기독교여성상담소에서도 실무자로 8년 동안 일을 했었습니다.

    기독교여성상담소에서 8년 동안 교회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면서 사실은 좌절감, 실패감을 많이 느꼈어요. 피해자가 원하는 정도의 지원은 거의 하지 못한 채로 커다란 벽에 계속해서 부딪히는 경험을 하면서 무력감을 느끼고 그만두게 된 거죠. 그 이후로는 사실 성폭력과 관련한 일들은 멀리했던 것 같아요. 물론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에서 여성 관련한 일들은 계속해왔지만, 교회 성폭력 건과는 조금 멀어진 채로 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죠. 영성 생활, 기도 생활을 주로 했었어요. 그러다가 미투 운동이 교회 내에서 일어나면서 어쩔 수 없이 (웃음) 다시 합류를 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죠. 사실 교회 내 성폭력은 저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주제예요. 정말 헌신하고 투신해서 피해자들을 돕고 성폭력이 근절되는 데에 힘쓰고 싶은 마음이 있고, 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피해자를 돕는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죠. “진짜 도울 수 있을까? 제대로?” 어쩌면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저의 무능함, 무력감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늘 양가적인 감정 속에 있지만 안 할 수는 없는 상황이죠.

    제가 알기로 기독교여성상담소가 한국 기독교에서는 최초로 만들어진 교회 내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예요. 그전에는 기독교 이름을 갖고 교회 내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가 없었던 것 같아요. 한국성폭력상담소나 여성의 전화와 같은 여성단체들이 뿌려놓은 씨앗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았죠. 목회자들에게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기독교여성상담소가 만들어진 배경은 사실 그 이전부터 성폭력 상담을 하고 있던 일반 단체들에서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지원하기가 더 어렵다, 가정폭력을 당했는데 목사로부터 “이것은 너의 십자가니 인내하라” 이런 이야기를 듣고, 그래서 폭력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지원을 하려 해도 벽에 가로막힌다.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니 여신협에서 해줬으면 좋겠다는 요청들이 계속 있어 왔다고 해요. 그래서 만들게 된 거죠.

    그때 저는 성폭력 상담소에서 파트 타임으로 봉사하고 있었어요. 여신협 활동도 하고 있었고. 그래서 저를 초청해주셔서 기독교여성상담소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진짜 할 일이 너무 많았죠. 거의 황무지인 상태였으니까. 게다가 가재는 게 편이라고 교단에서는 피해자 얘기를 들으려고 하기는커녕 꽃뱀으로 몰거나 음란 마귀가 씌웠다고 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도 교단 내에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일을 했냐면, 처음에는 상담원 교육을 했고, 또 교인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했어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서가 나왔어요. 그리고 가해를 저지른 목사들을 처벌해야 하는데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교단에 없으니까 교회법을 개정해야겠다라고 생각했죠. 교회법 개정 공청회를 열어 교단에서 법을 담당하는 목사들을 초청했는데 거의 안 왔죠. 외국에는 관련 법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외국 자료를 참고해서 교회법 초안도 만들고 그랬어요. 그런데 무슨 광야에 외치는 소리와 같았죠.

    기독교여성상담소에서는 성폭력뿐만 아니라 가정 폭력 신고도 받았어요. 제가 8년 동안 목회자 관련 피해자들을 한 100여 명 정도 만났어요. 그런데 사회법으로도 승소한 것은 단 한 건밖에 안돼요. 당시에는 사회법도 그루밍이나 항거 불능, 심신 미약 등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거죠. 지금은 교회 내 성폭력의 특수성에 대한 인식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지만, 그때는 더욱 부족했으니까.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화간으로 치부되었으니까. 그러니까 사회법으로 가도 처벌이 어렵고, 사실을 교회 안에서 처리해야 되는 일인데 교회 안에는 법이 없고. 저로서는 그야말로 고군분투하다가 좌절감에 떨어져 나온 셈이죠.

     

    Q. 활동 중 특별히 어려웠거나 가장 분노했던 점은 무엇인지, 혹시 구체적인 사례가 있으시다면 어떤 것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 당시에는 화날 일이 투성이라 분노하기도 어려웠던 것 같아요. 최근에 분노를 하죠.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으니까. 지금 교단 법을 바꾸거나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20년 전과 상황이 너무 똑같아요. 지금이나 그때나 목사들이 하는 행태가 똑같고, 피해자가 당하는 패턴도 똑같고, 그걸 처리하는 방식도 달라진 게 하나도 없고.

     

    Q. 현재까지 약 20여 년 간 기독교 내 여성의 목소리를 내오셨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여성학을 배웠어요. 그때는 나는 여자니까 당연히 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들었죠. 선배들이 여성학 커리큘럼을 만들어줘서 같이 공부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가 신학대학원에 들어와서는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여성학 공부도 하고 여성신학회도 만들었어요. 그러다 여신협을 알게 되어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여신협에 권희순 목사님이 담당하는 성폭력 작업반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교회 성폭력 관련한 해외 책들을 같이 읽고 번역하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섹슈얼리티 문제에 관심이 많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졸업하고 나서는 성폭력 상담소에서 상담원 교육을 받았어요. 그곳에서 자원 활동을 하면서 여신협에서도 실무자로 일을 하게 된 거죠.

    교회 안에는 성 불평등이 많은데 인식조차 못하고 있잖아요. 제가 안수받는 과정도 그랬어요. 저 같은 경우는 남편이 먼저 목사 안수를 받았는데, 제가 안수를 받으려고 하니까 “교회도 조그만데 사모 노릇이나 하지 무슨 안수를 받으려고 하느냐” 하면서 제 서류를 5년을 묶어뒀었어요. 서리를 붙들고 있어서 서리 전도사만 5년을 했어요. 결국 안수받게 된 배경도 다른 법들을 집어넣으면서 가능해졌어요. 은급비 같은 것. 은급비를 내면 은퇴할 때 연금을 받아가는 건데, 부부인 경우에는 200%를 다 내는고 110%만을 받아가게끔 법을 만들어 놓고 나서 안수를 준 거예요. 그 외에도 같은 교회 내에서 부부 목사가 같이하지 못한다 등 여러 제약도 만든 후에야 부부 목사 안수를 허용했죠. 안수받을 때 실없는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미혼인 경우에는 “결혼 못 해서 목회하려고 그러냐”, 저는 남편이 기관에서 근무한다고 하니까 “그러면 당신이 새벽기도 갔다 오면 남편 출근은 누가 시켜주냐” 이런 질문하고 있고.

    우리 때만 그런 질문을 받는 줄 알았어요. 근데 지금도 여전히 그런 헛소리를 하더라고요. 별소리를 다 해요, “애는 하나만 낳아라. 하나는 업고 심방 다닐 수 있지만 둘은 어떻게 데리고 다니려고 그러냐”. 그리고 이런 말도 들어봤어요. “남편이 당신 설교를 듣느냐” 그 사람들은 남편이 어떻게 자기 와이프 설교를 자존심도 없이 듣고 있는지 이해를 못 하는 거예요. 저도 그 얘기 들었던 것 같은데 저는 “저희 시아버지도 들으세요”라고 대답했어요. 제가 여신협에서 98년부터 일을 했는데, 그때 유학하고 돌아오신 신학자분들이 여성신학은 필수라고 얘기를 하셨어요. “여성신학을 안 배우면 반쪽짜리 신학이다” 이런 얘기를 남자분도 여자분도 모두 얘기를 하셔서 “와, 이제 다 됐구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이제 교회도 달라지고 다 됐다.” 그런데 그때 여성신학 배워왔던 교수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신학교에 이상한 사람들만 너무 많고. 완전히 무언가 뒤집힌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거예요.

     

    Q. 과거 운동들과 현재 운동의 흐름을 비교해 보았을 때 어떤 차이를 느끼시나요?
    많이 변했죠. 감리교 같은 경우는 그동안 총대, 총회 회원들이 거의 남자였거든요. 저희가 할당제를 계속 요구하면서 할당제 법안이 만들어지긴 했어요. 그런데 “여성을 가급적 30%로 한다.”고 장정을 만들어서 가급적으로 여성을 안 넣는 거예요. 그래도 감리교 같은 경우는 평신도와 총대의 수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여성 총대가 17% 정도 됐었어요. 그런데 여교역자의 경우에는 30%는 고사하고, 3.3% 정도였어요. 그래서 계속 법 개정 운동을 하며 “가급적”을 삭제하려고 노력했는데, 장정을 개정하는 위원들이 30%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 강경해서, “의무 15%”로 타협을 봤죠. 그동안 3.3%였던 것에 비하면 15%도 사실 굉장히 막강한 숫자인 거죠. 저희가 그때 양성평등위를 다시 조직하면서 여성 총대 교육을 하기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여성들은 교회에서 자기 발언권조차 제대로 못 찾는데, 총대 가서 꿰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것 아니냐. 그럴 거면 하지도 마라.”라는 이야기가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러면 우리가 교육해서 간다, 이렇게 된 거죠. 별의별 교육을 다 했어요. 3분 내에 발언하는 법, 이 사람이 발언하면 지지 발언하는 법 등등. 안건에 대해서 숙지시키기도 하고. 그런데 막상 가보면 남자들도 그냥 거수만 하다 가는 사람도 엄청 많거든요.

    처음에는 성폭력 특별법도 만들고 본부 안에 성폭력대책위원회도 설치하고 이런 야심 찬 포부를 갖고 있었는데, 처음부터는 어려우니 우선 목사 안수받는 분들이 성폭력 예방 교육이나 성인지 교육을 의무로 받게 하는 법안을 먼저 통과시켰어요. 그리고 그 다음 번에는 성폭력 대책위원회 설치를 올렸어요. 그래서 되긴 됐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너무 머리가 좋은 게, 위원회의 목적과 조직의 구성 이런 것들을 모두 삭제하고 “성폭력 대책위원회를 설치한다.” 이렇게만 올린 거예요. 그래서 어쨌든 통과가 되긴 했는데 운영을 못 하게 된 거죠. 안 해줄 수는 없는 해주기는 싫으니 그런 편법들을 쓰는 거죠. 성폭력 특별법 같은 경우는, 사실 특별법으로 만드는 데에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거예요. 목회자들의 범과, 어떤 죄를 저지르면 어떤 처벌을 받는다라고 하는 그 범과 안에 성폭력이 없어요. 그냥 ‘부적절한 성관계’만 들어가 있어요. ‘부적절한 성관계’라고 하니까 성추행은 처벌을 못 받아요. 성관계는 삽입 성교만을 의미한다고 해석을 해서요. 그래서 성추행, 성희롱, 성폭력, 강간 이런 것들을 모두 처벌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넣기 위한 작업들을 계속해왔는데, “어떻게 신성한 교회법 안에 성폭력이라는 말을 집어넣을 수가 있느냐” 이런 얘기를 하면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어쨌든 5-6년 정도 됐나, 교단마다 그런 운동을 거의 다 하고 있잖아요. 통합 측도 그런 법이 생겨서 교육하고, 기장도 계속 거부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성폭력 특별법을 계속 올리고 있고. 이런 게 굉장히 놀라운 거죠. 사실 한 번에 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아요. 계속 올리고 싸우고 하면서 인식이 바뀌고, 이러기를 바라고 있는 거죠. 감리교 같은 경우는 지침서 등을 총회에서 배포할 수 있도록 건의한 것이 통과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성폭력상담센터를 본부 안에 두어서, 물론 예산도 하나도 안 나와요. 우리가 거의 떼써서 만든 건데. 그래도 본부 홈페이지에서 홍보할 수 있게 하고. 이런 노력들과 성과들이 조금씩 있는 거죠. 정말 놀라운 것 같아요. 20년 전에 했던 것들이 씨앗이 돼서 오래도록 올라와서 이제 조금씩 결실을 맺는 느낌이에요.

    계속 우리들끼리 하는 얘기는, 당장 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면 좌절하고 실망하고 상처받는다. 그냥 지금 당장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계속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한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다. 법을 만들고 제도를 고치고 인식을 바꾸는 이 일들은 단번에 되는 일이 아니어서 마음을 다잡으면서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Q. 실제적인 현장에서 여성신학적 관점이 어떻게 활용되어왔고, 어떤 효과를 낳았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관점이라는 말이 중요한 것 같아요. 관점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을 보는 시각이나 가치관이잖아요. 일종의 감수성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이 비유를 제가 굉장히 많이 쓰는데, 성경에는 여러 번역본이 있잖아요. 옛날의 개역성경에는 문둥이, 절름발이 등 장애인에 대한 거친 표현들이 적나라하게 쓰였어요. 그런데 지금의 표준새번역이나 개역개정만 해도 그런 표현들은 나병, 한센병 등으로 수정되었거든요. 그 병을 가진 분들의 호소를 반영한 거예요.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모르잖아요. “문둥이를 문둥이라고 부르지 뭐” 이런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나는 몸서리 처지게 힘들다. 성경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는 말을 받아들이면서 표현을 바꾼 거죠. 그건 차별을 없애는 일이잖아요.

    성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인 거죠.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모르는데, 그동안 ‘나’를 대표하는 것은 남성이었으니까, 다른 약자들, 소수자들의 음성을 듣는 일이 필요한 거죠. 단지 남녀의 문제라기보다 모든 소수자, 모든 약자들에 대한 관심, 수용, 경청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개역개정에 “그중 한 계집이 말하길” 이런 표현들이 있잖아요. 원문에는 그저 ‘여자’로 나와있는데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여자’가 ‘계집’이 된 거예요. 물론 ‘계집’이 여성을 칭하는 단어이긴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담긴 비하의 의미를 느끼잖아요. 이런 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바꾸어 나가고 감수성을 갖는다는 것. 이것은 성경뿐만 아니라 교회 생활에도 중요한 것 같아요.

    성경이 이야기하는 약자에 대한,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수용을 여성신학이 알려준다고 생각해요. 여성신학은 그냥 반드시 해야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동안의 신학이 반쪽 신학이었잖아요, 남자들의 전용이었기 때문에.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해요. “내가 아는 게 전부야”라고 해버리면 난센스죠. “이것은 남성의 시각에서 남성이 보고 남성의 입으로 남성의 말로 된 것이다”라는 것을 일단 받아들이고, 그러면 여성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가 필요하죠. 제가 처음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선배 목사님 중에 한 분이 성경을 팔레스타인 입장에서 봐보자는 얘기를 했어요. 우리는 항상 이스라엘인의 입장에서 성경을 읽잖아요. 그리고 아브라함 이야기를 읽을 때 여성들은 사라의 입장에서 읽지 하갈의 입장에서는 안 읽어요. 저는 그게 너무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성경을 풍성하게 하는 일이잖아요. 마찬가지로 분량이 많은 편인 레위인의 첩 이야기를 남성들은 아무렇지 않게 읽지만, 여성들의 눈에는 확 띄죠. 자기가 처한 상황이나 자신의 경험에 따라서 모두 다르게 읽히는 건데 어느 한 편만 갖고 본다면 그건 반쪽짜리, 반의반 쪽도 안 되는 시각인 거죠. 그래서 여성신학이든 제3세계 신학이든 각자 자기가 처한 곳에서 자신의 경험으로 성경을 읽어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Q. 운동의 어려움, 변화의 더딤 등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목사님께서 현재까지 계속해서 활동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요?
    동료인 것 같아요. 뜻을 같이하고 감정과 정서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다는 자체가 제일 큰 힘이 돼요. 피해자들에게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려고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거잖아요. ‘#CHURCHTOO #있다 #잇다’의 ‘잇다’도 그 ‘잇다’잖아요.

     

    Q. 목사님이 꿈꾸시는 교회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교회에 대해서도 양가적인 감정인 것 같아요. 교회가 개선이 될 수 있을까? 사실은 회의적이고 얼른 망하는 것이 낫겠다,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제가 여신협 활동을 쉬면서 주로 했던 것이 침묵 기도, 관상 기도 훈련이었어요. 관상 기도 훈련을 하면서 교회가 영적인 집단인가에 대한 회의가 많이 들었어요. 어떤 프로그램과 조직에 의해서 유지되기는 하는데, 깊이 침잠해서 기도하고 나의 영적인 것들을 나누는 일들은 교회 내에서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안타깝게 느껴지더라고요. 요즘 성 인지 감수성 훈련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것은 거의 영성이라는 거예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나를 내려놓는 일이잖아요. 나의 것이 가득 찬 상황에서는 누군가를 들을 수가 없어요. 제대로 듣지 못하면 공감할 수 없고. 감수성을 키운다는 것은 그런 것 같아요. 저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를 내 주장이나 가치관을 내려놓고 들을 수 있는 것,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듣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점점 더 개방된다는 의미인데, 그것은 영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성 인지 훈련이 내가 경험하지 않았던, 내가 보지 못했던 어떤 것들을 보고 듣고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한다면, 교회가 성인지 감수성이 풍성한 곳이 되는 것이 결국에는 영적인 곳이 되는 일 같아요. 그러면 함께 지내고 함께 사는 게 즐겁고 행복한 일이 될 것 같아요.

     

    Q. 교회 내 여성운동을 잇는 후배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한 말씀을 남겨주세요!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이 2020년도에 2030 연구원을 모집했어요. 엄청 많이 오신 거예요. 그리고 너무나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데, 그동안 이분들이 갈급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털어놓을 데가 없고, 교류할 무언가가 없었던 것에 대한 갈급함. 어쩌면 지금 후배들은 저의 2-30대보다도 더 힘들고 고갈된 상태로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성신학 얘기만 하면 공격받기도 하고, 지금 상황이 더 힘든 거죠. 우리 때는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자기들을 위협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무엇보다 연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같은 세대끼리의 연대도 중요하고, 세대 간의 연대도 중요하고. 선배들이 할 일은 그 판을 깔아주는 것, 마음껏 여기서 얘기하고 놀고 울고 불고 하든지, 뭐든 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고, 할 수 있는 한 그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 그게 선배들이 할 일인 것 같아요. 젊은 세대들은 최선을 다해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저 함께 연대해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같이 손 내밀고 그 손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google":["Raleway","Quicksand","Questrial"],"custom":["Noto Sans KR"]}{"google":["Raleway","Quicksand","Questrial"],"custom":["Noto Sans KR"]}
    {"google":[],"custom":["Noto Sans KR"]}